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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人天下<9>왕비가 된 창녀, 잔느 랑송(下)

극에 달한 사치와 방종…단두대에서 생 마감

2006년 06월 05일(월) 11:25
1774년 5월, 프랑스 국민들은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루이15세가 천연두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의 나이 예순 넷. 무능했던 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국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험악하게 변해 이제 모든 비난의 화살이 잔느 랑송에게 날아들었다. "당신은 창녀일 뿐이요. 당장 궁전을 떠나 수녀원으로 들어가 참회하며 사시오." 성난 군중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니었으나 그녀는 "왜들 이러지? 왕을 충실히 모신 죄밖에 없는데…"라며 앙칼지게 국민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강압에 의해 수녀원으로 쫓겨갔다. 마치 조선시대 희빈 장씨처럼.
후에 그녀는 세상이 조용해지자 수녀원을 탈출하여 세상으로 복귀한다. 그녀 나이 서른 한 살. 아직도 요염한 자태를 지닌 그녀는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사내부터 찾았다. 그녀가 던진 미끼에 영국인 시모아 경이 걸려들었다. 한 나라의 국모였던 그녀는 권위와 체통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또다시 창녀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시모아 경과 그녀는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혁명의 물결이 프랑스를 뒤덮었다. 놀란 그녀는 런던으로 피신했다. 시모아 경은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프랑스 저택에서 살해됐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시모아 경에 대한 애도 따위는 그녀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오직 도둑맞은 보석에 대한 안타까움만 있을 뿐이었다. 워낙 보석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그녀는 이듬해인 1793년, 잃어버린 보석을 찾겠다는 열망에 휩싸여 목숨을 걸고 프랑스로 들어갔다가 공안에 체포되고 말았다. 기름을 안고 불 속에 뛰어든 것이다.

창녀로서 왕비의 자리에 올라 백성의 삶을 걱정하기보다는 사치와 향락으로 백성의 피를 빨았던 그녀를 성난 군중들이 무사히 놔둘 리 만무했다. 그녀는 단두대가 설치된 궁전 앞의 광장으로 끌려나갔다. 성난 군중들은 그녀가 단두대로 가는 동안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창녀야, 지옥으로 가거라!" 단두대 앞에 무릎을 꿇은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한물간 창녀 하나쯤 죽인다고 마음 아파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군중들은 조소하며 그녀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자, 이제 준비됐소?" 집행관의 질문에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나 결국 집행관의 손에는 그녀의 떨어진 목이 높이 치켜 들렸고,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를 올려 그에 화답했다. 엄청난 분노의 표출이었다.
훗날 사가들은 그녀의 사치와 방종이 결국 프랑스혁명을 재촉하였으며, 봉기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녀는 또 왕비보다는 뒤바리부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가장 악덕한 여자의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왕비까지 됐으나, 자신의 태생에 비추어 궁핍한 민중들을 돌보지는 못할망정 사치와 방종의 극치를 보여준 삶의 결과였다.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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